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를 보고 왔다. 사람들의 자와자와가 붉은사막 출시 때의 분위기와 비슷하기에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극호였고, 다소 떨떠름해하며 함께 본 짝꿍의 반응도 결과적으로 반전이다. 이 영화에 대한 불호 이유는 꽤 명확하다. “이게 뭐임?” 나에게는 그 불만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관람 초반부터 해석의 단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처음 범석이 성기와 합류해 차량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왠지 게임 컷신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싶어 영화 대신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본다는 관점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별다른 저항선 없이 거의 모든 장면과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단순하게 컷의 구도뿐 아니라, 사건이 배치된 구조나 인물의 대사, 세트의 구성까지 영화 작법보다는 게임의 연출 문법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는다.
전반부 바미기르 격퇴 편에서 파괴된 마을은 현실성 있는 공간이라기보다 게임 스테이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뚫린 벽과 좁은 골목은 플레이어가 보스를 유도하거나 동선을 제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널브러진 시장 좌판이나 쓰러진 주민들, 가축들은 스테이지의 무드를 형성할 뿐 주요 이동경로를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놓인다. 공간은 현실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플레이가 성립하도록 구성된다.
바미기르와 마베이요는 격퇴되지 않게끔 설계된 보스몹처럼 행동한다. 이런 기믹에서 보스몹은 정해진 공격 패턴을 반복하며 추격을 하고, 플레이어는 회피와 유인으로 그들을 특정 공간으로 유도해야 한다. 공격의 목적은 보스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보스의 주의를 끌고 유지해 원하는 장소까지 유도하는데 있다. 조우는 인물의 운명을 결정하지 않으며, 플레이어를 다음 스테이지로 옮기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후반부에 숲에 진입한 성기 무리 중 한명이 왜 이 말들은 해치지 않았을까 하고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단순한 개그씬이거나, 관객의 의문을 미리 해소하기 위한 알리바이일 수도 있으나, 지금까지의 흐름처럼 기능으로 해석해보고 싶다. 말은 플레이어에게 귀속되는 이동수단이고, 귀속된 이동수단은 보통 피해를 입지 않는다.
성애가 준비해둔 경찰차나 자경단 트럭은 다른 방식으로 기능적이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자리에 등장해서, 세이브포인트나 보급소처럼 기능하고 퇴장한다. 장치는 개연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플레이의 지속을 위해 놓이거나 치워진다.
성애의 대사 톤에 대한 불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플레이어블 캐릭터에 동행하는 NPC 스크립트라고 생각하면 크게 어색하지도 않다. 상황을 짚어주거나 반응하는 정도로만 동작한다. 성애 뿐 아니라 대부분 인물이 짧은 욕설과 간단한 반응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질적인 건 해솔아저씨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를 언급하고, 또 그의 발언을 의심의 여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메인 퀘스트를 전달하는 NPC로 보인다. 세계의 규칙을 설명하기 위한 존재이므로 그가 제시하는 사실은 그저 받아들이게끔 되어있다.
인물들은 성격이 아니라 역할로 존재한다.
여기까지 타고오면,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 공간과 이벤트, 장치와 인물은 서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를 성립시키기 위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이게 뭐임?”이 나에게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모든 요소가 서사에 봉사한다고 전제할 때 생기는 질문이다. 봉사 대상이 기능이라면 답은 매번 같다. 그래야 다음 구간으로 넘어가니까. 덕분에 나는 보는 내내 즐거웠다. 남들이 “이게 뭐임?”이라고 물었을 자리마다 나는 “역시 그렇게 되는거지”를 확인한다.
게임은 오래전부터 영화의 문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왔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이 영화를 닮았다는 말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호프에서 반대의 가능성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