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디세이아를 한 영웅이 겪은 기이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봐야 할까. 물론 개인이 지닌 재능의 총합이 남들보다 탁월했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개인에게 기대되기 어려운 어떤 자질들을 한 인물에게 집중시키고, 그것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려낼 수도 있다.
오디세우스를 그런 종류의 구성체로 생각해보게 된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여러 기능을 하나의 인격에 압축했다면, 그가 겪은 여러 시련들은 지도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관한 사례 모음이다. 그 문제들의 성격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건 외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어떤 건 자기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의 문제다. 또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스릴지까지도 문제가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곧장 귀환하지 않았다. 이스마로스를 습격하는 이야기로 이어지는데, 트로이 전쟁을 해상 무역 이권 투쟁으로 해석한다면, 새로 확보한 권역 주변의 측량 활동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하려는 부분은 오디세우스가 즉시 철수하려 했다는 점이다. 부하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 결과 키코네스의 반격을 받아 손실을 입는다.
이 이야기는 퀴클롭스 섬에서 있을 사건에 대한 예고처럼 읽힌다. 외부세계에는 접촉면을 짧게 유지하라. 접촉이 길어질수록 위험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 위험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외부세계에 소속세계의 좌표가 드러나는 것이다.
퀴클롭스의 섬을 떠나는 순간에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이 장면은 영웅을 시련에 빠지게 하는 오만에 대한 경고로 흔히 읽히지만, 오디세이아가 지도자 처세에 관한 지침이라면 다른 종류의 경고도 읽어낼 수 있다. 이스마로스에서는 오래 머무름으로써 지금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 노출된다. 퀴클롭스의 섬에서는 그 이상, 소속된 공동체의 위치까지 노출된다. 이름 때문이다.
외부세계와의 접촉 과정에서 이름을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되는가.
이름은 명성의 단위다. 공동체 내부에서 명성은 자격을 증명하고 권위를 강화한다. 그러나 외부세계에서 명성은 다른 기능을 갖는다. 소속을 특정하는 좌표를 만든다.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이며 이타카의 왕이다.”
이 말로써 오디세우스라는 개인은 이타카라는 공동체와 연결된다. 폴리페모스는 이제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폴리페모스는 그의 공동체, 포세이돈이 대변하는 외부세계에 표적을 전달한다.
오디세우스가 연결한 이타카와의 연결을 끊어내는 것. 그것이 외부세계에 자신의 좌표를 노출한 지도자가 치러야 할 대가다.
그래서 오디세우스 귀환 여정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오귀기아 섬은 그가 어떤 대가를 치뤄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칼립소는 신의 이름이지만, 한편으로 지도자가 스스로를 격리함으로써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이름이 감추어짐으로써, 그의 명성이, 정치적 영향력이 소멸한다.
포세이돈의 진노가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실패했을 때 따르는 응징이고, 칼립소가 그 대가를 치르는 방식이라면, 그런 실패를 피하기 위한 규칙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제우스의 법, 크세니아다.
크세니아를 단순히 낯선 이를 잘 대접하라는 환대의 규칙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공동체의 경계에서 낯선 자와 관계를 맺는 방법, 서로의 지위와 소속을 확인하고 어디까지 관계를 허용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복합 규칙으로 볼 수 있다. 환대는 그 프로토콜이 수행되는 형식일 뿐이다.
이것은 그리스 문명에서만 발견되는 규율이 아니다. 이동성이 높은 사회에서는 낯선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일상적인 문제였고, 유목 문화권이나 사막의 교역 문화권에도 유사한 규범들이 보인다. 환대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라, 낯선 자와 안전하게 관계를 맺기 위한 제도인 것이다. 이런 문화권에서 손님을 받아들이는 주인의 행위는 공동체가 지도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 항목이 된다. 공동체의 경계를 지키고, 그가 가져온 기회와 미지의 위험을 함께 가늠한 뒤, 어떻게 대할지 결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에게 주어진 다른 시련들을 이런 식으로 살펴보면, 지도자가 대면해야 할 여러 문제들에 관한 우화처럼 읽힌다. 예를 들어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시련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이다. 불가피한 손실을 어떻게 감수하고 최소화할 것인가를 지도자는 고민하게 된다. 세이렌의 시련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외부의 위험을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그 위험을 판단하는 자기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오디세이아는, 구술전승하기 위해 서사화된 제왕학처럼 보인다. 오디세우스가 신체적 강건함으로 탁월함을 증명하는 다른 그리스 영웅들과 차별화된 이유도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