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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는 템플스테이

2026년 9월 6일 / 구례 / standard

#뚜벅뚜벅

서울에서는 세계 불꽃축제가 있었다지. 그날, 미리 신청해둔 행사가 있어 우리는 구례로 향했다. 티하우스 일지와 FC호흡으로 모인 9명의 작가들이 함께 진행한 천은사 템플스테이. 팔로우하고 있던 작가님 스토리를 통해 알게 된 행사다. 작가들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차회를 통해 사용해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사라는 점에서 지나칠 수 없는 기획이었다.

짝꿍은 10월에 일본 여행 갔을 때 테이블웨어 몇 점을 들일 계획이 있었으므로, 이번 행사에서는 물욕을 부리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다. 내가 옆에서 전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이것저것 들이게 된다. 보물찾기 프로그램으로 작가들의 작은 기물 하나씩은 주어질 것이었기에, 완전히 빈손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번 여행에는 동행인이 한 명 더 있었다. 아내의 친구 서현님. 안양에서 픽업 후 점심 챙겨 먹으며 구례로 향한다. 갈 길은 멀거니와 안내받은 입소 시간은 3시. 점심 챙겨 먹으며 느긋하게 이동한다. 점심은 공주 동신원에서 먹는다. 탕수육도 좋았지만 간짜장이 정말 훌륭했다. 지방 여행 중이라야 이런, 달지 않고 발효취가 은은하게 남아있는 춘장의 맛을 겨우 만나 볼 수 있다. 곧 사라질 맛. 현역이 은퇴하고 나면 맥이 끊길 맛.

입소 안내를 받은 뒤, 작가님과 인사를 나누고 숙소 주변에 배치된 작품 설명을 들었다. 그러고 나서, 저녁식사를 하고, 재즈 페스티벌 무대를 관람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야간 차회를 한다. 템플스테이라고 해서 느긋한 일정으로 예상했는데 완전 빗나갔다.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서는 SM재즈 트리오와 말로밴드가 공연을 했다. 짝꿍과 서현님은 말로밴드에 완전히 몰입했는데, 밴드와 자신만이 남겨지는 듯한 순간마저 있었단다. 공연은 적당히 보다가 숙소에서 잠깐 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는데, 그러지 않길 잘했지.

다회는 세 개 조로 나누고 로테이션 하는 방식이었다. 작가님들이 본인의 다구로 차를 내려주시면서 차담을 진행한다. 티하우스 일지에서 제공한 차를 두세 종류씩 맛볼 수 있었다. 오전 작품 설명 시간에 이미 간단한 질답 시간은 있었지만, 무리 속에서 발언권을 얻기 어려운 성격의 사람들도 있으니 이런 자리는 참 귀하다.

첫번째 다탁에서, 지승민 작가님과 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시된 작품으로 바라만 봤을 때는 잘 모르는 것이지만, 작가님의 기물은 사용감이 참 좋다. 감촉이나, 크기나, 무게나, 여러면에서 손에 감긴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평소에도 차를 즐겨 드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작가님의 기물을 탐하게 되었는데, 다음날 보물찾기를 통해서 짝꿍의 손에 들어왔다. 인연이다. 산사에서 맺어온 인연이라니 이런 호사가 더 없을 것 같은데.

두번째 다탁에서는 김규태 작가님, 백경원 작가님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짝꿍은 백경원 작가님의 작업을 마음에 들어했다. 초기 오브제 작업을 가져오셨는데, 차담에서는 다우처럼 놓아두셨다. 쓸모를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는 설명에 마음이 갔던 모양이다. 오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작품 한 점을 들이기로 한다.

세번째 다탁에서는 신소언 작가님과 주로 이야기 나눴다. 형태보다는 재료를 통한 표현에 몰두 중이라고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다른 작가님들이 설명하실 때도 재료에 관한 이야기들을 더 재미있어 했던 것 같다. 어떤 흙과 유약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가마에서 굽는지 같은 이야기가 주로 기억에 남는다.

나는 신소언님의 잔을 두 개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작가님은, 보물찾기에서 발견할지 모르니, 하나는 다음날 확정하자고 하셨다. 결국 내가 발견한 건 이문현 작가님의 잔이었다. 모란문의 작은 찻잔 한 쌍. 그렇게 우리는 보물찾기에서 발견한 잔 세 개와, 신소언 작가님의 잔 두 개와 백경원 작가님의 오브제 하나까지 바리바리 싸 짊어졌다.

서현님은 보물찾기에서 정준영 작가님의 잔을 발견했다. 아내는 친구에게 마음에 드는지를 물어봤는데, 그렇다는 답변을 들어 의외였다고 한다. 정준영 작가님의 작업은, 개중 가장 반듯하지 않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거친 형식이었는데, 그게 알고 있던 친구의 성격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셋이 마음에 들어했던 부분들은, 어쩌면 예전에 별로 좋아하지 않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비기능적이거나, 장식적이거나, 구불구불한 것들. 각자가 덜어내려고 했던 것들에 오히려 마음이 쓰인 건 아닐까.

비우지 못하고 한껏 채우고 왔구나. 그러나 채우고자 비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