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티스의 REDRED 퍼포먼스 필름을 봤을 때, 나는 배경에 먼저 시선을 보냈다. 일산같은데? 더 글로우 2026 관람을 위해 올 초 방문했기 때문에 더 빨리 눈치챘던 것 같다. 근데 아마도 배경이 일산이 아니었다 한들 1기 신도시적 풍경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들의 다음 곡인 TNT의 퍼포먼스 필름도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이 비디오는 REDRED만큼 장소 특정적이지 않지만, 왠지 비슷한 감상을 갖게 한다. 사실 퍼포먼스 필름보다는 온더스팟의 영상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역시 물류센터와 중공업단지의 풍경이 눈길을 끈다.
나는 처음에 이 그룹에 대한 호감이, 어떤 날것의 느낌. 최근 너무 매끈하게 깍여 나오는 케이팝 프로덕트 들 중에서 유독 거친면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접착면같은 방향으로 생각 했었다. 그런데 이들이 제공한 영상물 중에서 따로 눈길이 가는 유형이 따로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늘 비슷한 종류의 풍경에 이끌렸던 것 같다. 안양천과 1호선, 서부간선도로와 시흥대로가 나란히 뻗어 있고 도시순환고속도로가 그 위를 가로지른다. 이 큼직한 인프라들 사이로 중심부에 편입될 수 없는 물류와 산업기능들이 얼기설기 남아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석수역 언저리의 풍경이 그렇다.
돌이켜보면 나는 경계의 풍경에 익숙했다. 여러 기능이 그곳으로 밀려나 우연히 맞닿으면서 생기는 어떤 무질서함 혹은 어수선함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의 작업물에서 이끌렸던 건, 덜 다듬어진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기능하는 거대공간, 그런데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풍경이었던 것 같다. 근대 건축물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에 늘 흥미를 느꼈던 것도 비슷한 정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런 공간들이 점거되는 순간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을까.
점거된다는 건 기존에 없던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산업시설을 배경으로 새로운 집단이 등장하고 물류를 위해 지어진 공간에서 퍼포먼스가 벌어진다. 원래의 기능과는 다른 리듬이 개입하는 순간이다.
기능하는 거대공간은 주로 멀찌감치 보여진다. 그 안에서야 무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겠지만, 외부에서 볼 때는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움직임으로 읽힌다. 물류센터의 트럭, 철도의 운행, 산업단지의 생산 활동 같은 것들이다.
그런 공간에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끼어들면 풍경에는 단차가 생긴다. 정박 사이에 엇박이 들어온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공간이 본래의 기능을 잠시 벗어나고, 전혀 다른 의미를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