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에서 나는 인터넷이 더 이상 매체가 아니며, 사회가 형성되는 환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 이에 관한 청사진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때론 제도의 개입이 요구되기도 한다.
인터넷에 대한 제도의 개입이 논의될 때 여러 쟁점들이 등장하지만, 이것들을 모두 점검할 수는 없다. 다만 사회화 구조를 설계하려면 부딪힐 수 있는 문제 하나는 짚어봐야 한다. 익명성이다.
앞선 글에서 고민했던 것처럼, 미성년자와 불특정 성인의 접촉을 제도적으로 조정하려면, 누가 미성년자이고 누가 성인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식별의 가능성은 익명성 침해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나는 익명성의 문제를 분해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매체로 다루어지던 때라면, 이러한 분해가 불필요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미 현실과 동격이거나 능가하는 삶의 공간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익명성을 좀 더 정교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하나의 관계 아래서 익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 개인과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권력 사이. 수직적인 축에서 익명성의 역할이다. 내부 고발자나 반체제 발화자, 아니 선량한 시민조차, 이 수직적인 축에서는 권력에 비해 약자의 위치에 놓이며, 자유로운 발언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보호장치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보호장치는 익명성이다. 개인은 특정되지 않음으로써, 본인의 위치를 숨기고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익명성의 가치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명성이 절대로 침해되지 않는 권리로 다뤄지지는 않는다. 평상시에는 이용자의 신원이 익명화 되겠지만, 범죄에 연루된 경우라면 이 장치는 무력화 될 수 있다. 즉 조건부 장치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이 조건부 판단의 주체가 바로 진짜 문제라고 이야기 할 것이지만, 이는 현대를 사는 개인의 신념에 관한 문제이므로 여기서 더 따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겠다. 확인하려고 했던 건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익명성은 수직적 위계에서 정당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익명성을 분해해봐야겠다는 이야긴 다른 축, 즉 수평적인 축에서 익명성의 작용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익명성이 수평적인 축에서 작용할 때, 그것은 대칭적인 보호장치라기보다 비대칭적인 폭력도구로 기능한다. 먼저 쥐는 쪽에 유리한 무기가 되기 때문이다. 악의를 가진 누군가가 대중 속에서 은닉한 채 나를 겨누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 속에서 개인은 안전해질 자유를 침해받는다. 적어도 미성년자들은, 안전하게 보호받아야만 한다.